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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브래드버리, 《화성 연대기》(현대문학, 2020)에 붙여 : "가드닝과 테라포밍, 인류의 선택은?" by decomma 지난 2012년 8월, 탐사로봇 큐리오시티가 화성에 첫 바퀴 자국을 남겼을 때, NASA에서는 그곳을 ‘브래드버리 착륙지(Bradbury Landing)’라고 명명했다. ‘화성의 음유시인’이라 불린 SF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를 기리는 의미에서였다. NASA 관계자는 “브래드버리의 작품은 우리에게 화성에 생명체가 있을 것이란 영감을 줬다”며 작가를 기렸는데, 브래드버리는 《화성 연대기》(1950) 등을 통해 인류의 화성 이주를 담은 작품을 많이 남긴 바 있다. 미래와 우주를 다룬 SF에서 보통 인류는 ‘가드닝’을 행성급으로 진행한다. 이제는 흔하게 쓰이는 테라포밍(terraforming, 지구가 아닌 행성이나 위성을 지구의 대기와 온도, 생태계와 비슷하게 만들어 인간이 살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이라는 말..
레이 브래드버리, 《화씨 451》& <미소> 리뷰 : “불태우는 일은 즐겁다” by decomma 확실히, 숱한 멍때리기 중 ‘불멍’이 가장 즐거운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직업이 불을 지르는 것이라면 사정이 조금 다를 것이다. 게다가 그 방화의 대상이 책이라면? 레이 브래드버리의 소설 《화씨 451》의 배경은 책을 읽는 것도, 소유하는 것도 금지된 미래사회, 말 그대로 모든 책이 불법이다. 책을 소유했다가 적발되면 집도 함께 태워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정의의 이름으로, 합법적으로 책을 불태우는 방화수(放火手, fireman) 가이 몬태그가 주인공인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불태우는 일은 즐겁다.’ 하지만 방화수 몬태그는 책을 태우는 일이 그저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비단 불태우는 일이 직업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인지도 모를 책을 집과 함께 태워버리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의문..
코니 윌리스, 《양 목에 방울 달기》 리뷰 : "혐오가 작동하는 방식" by decomma 강한 편견이란 제일 오래되고 제일 추악한 유행 중 하나이고, 워낙 끈질기게 지속하다 보니 대상이 계속 변하지 않았다면 유행이라고 불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위그노교도, 한국인, 동성애자, 이슬람교도, 투치족, 유대인, 퀘이커교도, 늑대, 세르비아인, 세일럼의 주부들…. 규모가 작고 다르기만 하다면 거의 모든 그룹에 차례가 돌아갔고, 그 패턴은 절대 달라지지 않았다. 못마땅해 하고, 고립시키고, 악마로 몰아세우고, 박해하고. 그것은 유행을 시작하는 스위치를 알아내면 좋을 이유 중 하나였다. 나는 편견의 유행을 영원히 꺼버리고 싶었다. - 코니 윌리스, 《양 목에 방울 달기》 코로나 19 장기화로 한국 성인 평균 6킬로그램 가까이 체중이 증가했다는 뉴스를 보고 지난 1년 배달 앱의 주문내역을 상기해보며 그럴 ..
이서영, <당신이 나를 기억하는 한> 리뷰 : “아레카야자야, 나도 너를 만난 것이 무척 기뻤어” by decomma 첫 책을 낸 지 5년 반 만에 100종을 낸 아작은 SF 전문 출판사이지만, 100종 숫자에도 넣지 않은 책을 2년 전 한 권 만들었는데, TV 프로그램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공식 가이드북이 그것이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고양이 관련 책을 사서 봐도,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은 책을 사서 볼 시간조차 없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역시나 강아지 책은 그다지 많이 팔리지 않았다. 당시 반려견에 관한 책을 준비하면서 여러 반려동물뿐 아니라 반려식물에 관한 것까지 이것저것 공부를 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책을 만들기 위한 직업적 관심사였지 마음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러던 내가 지난 한 해 삽목과 분갈이를 한답시고 화분과 흙을 사서 손에 흙을 묻히고, 출근해서 가장 먼저 분무기로 아레카야자에 물을 ..
곽재식, <숲 속의 컴퓨터> 리뷰 : "큰돈을 쉽게 벌 방법, 궁금할 수 있잖아요" by decomma 근래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저기 멀리 보이는 빌딩까지의 거리”나 “한강을 건너다 한강 폭이 궁금할 수 있지 않으냐”며, 범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궁금함의 세계를 삼각함수 급으로 선보인 작가 곽재식은 과학자라는 본업도 본업이지만, SF 소설가로 오랜 세월 많은 작품을 선보여 왔다. 소설뿐만 아니라 과학 교양서, 괴물 관련 인문 교양서, 글쓰기 에세이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쏟아져 나오는 곽재식 작가의 출간작들은 어쩌면 그런 ‘궁금함’의 결과물일지도 모르겠다. 오죽하면 곽재식 작가의 왕성한 집필력에 대해 독자들 사이에서 ‘곽재식 속도’라는 유행어가 있을 정도니, 사람들은 TV를 보며 그저 크게 한번 웃고 넘어간 ‘곽재식의 궁금함’은 작가를 진지하게 대표하는 키워드 중 하나일지 모르겠다. 궁금함에 대..
P. D. 제임스, 《사람의 아이들》리뷰 : "어린이가 사라진 세계" by decomma 2021년 새해 첫날, 자정에서 막 3분을 넘긴 늦은 시간에 부에노스아이레스 교외의 한 술집에서 소동이 일어나, 지상에 마지막으로 태어난 인간이 25년 2개월 12일을 살다 살해당했다. - P. D. 제임스, 《사람의 아이들》 팬데믹이 강타한 2020년은 여러 측면에서 전 세계적으로 충격적이었지만, 대한민국 인구사에서도 변곡점을 찍은 한 해로 기록될 듯하다. 2021년 새해가 밝자 언론들이 앞다투어 쏟아낸 기사는 이랬다. “대한민국 주민등록인구가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자연 감소!” “신생아 30만 명 선마저 붕괴!” “15년간 저출산 대책에 225조원을 썼지만….” 어쩐지 기시감이 느껴져서 기억을 더듬어보니 두 해 전 한국어판을 낸 《사람의 아이들》의 첫 문장이 그랬다. 어쩌다 하필 소설의 배경도 2..
오승현, 《꼰대책방》(구픽, 2020) 리뷰 : "누가 책의 미래를 묻거든" by decomma “우리는 우리가 본 대로 된다” “우리는 우리의 도구를 만든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우리의 도구가 우리를 만든다.” 어쩐지 종로에 1호 매장을 둔 대형서점에 가면 볼 수 있는 글귀 같지만, 1964년 출간되어 센세이션을 일으킨 마셜 매클루언의 책 《미디어의 이해》의 전제가 되는 문장이다. 매클루언은 책에서 ‘미디어’의 범주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신문이나 라디오, 텔레비전, 영화, 광고뿐만 아니라 자동차와 의복, 주택, 심지어 무기나 자동화까지 인간이 만든 모든 인공물을 포함했다. 그리고 그 모든 미디어는 결국 인간의 확장이자, 메시지라고 설파했다. 매클루언이 ‘미디어’로 정의한 그 모든 문명의 이기들에는 일련의 익살스러운 부제이자 해석이 붙었는데, 예를 들면 의복은 ‘피부의 확장’, 광고는 ‘사람들에게 ..
R. F. 쿠앙 장편소설 <양귀비 전쟁> 리뷰 : “죽더라도 내 손에서 나온 불꽃으로, 내 심장에서 솟은 분노로 죽을 거야.” by 심완선 “죽더라도 내 손에서 나온 불꽃으로, 내 심장에서 솟은 분노로 죽을 거야.” 1. 여기 팽 루닌, 줄여서 린이라고 불리는 10대 소녀가 있다. 그녀는 주인공답게 보잘것없는 출신에 비범한 잠재력과 불같은 성미, 희미한 가능성에도 악바리처럼 매달리는 근성을 지니고 있다. 린은 고난과 상실이 일상인 삶을 마주하지만, 이에 순응하는 대신 끊임없이 분노하고 슬퍼하며 다시 일어난다. 전쟁고아로서 양부모의 학대를 받으며 자란 린은 원치 않는 결혼을 하든가, 아니면 “성매매와 구걸이 혼합된 삶”을 택해야 한다. 청조 말기를 모티프로 삼은 니칸 제국은 극심한 기근과 빈부 격차, 부정부패로 인한 말기 증상을 겪고 있다. 그 와중에 아편 밀매에 손대는 사람들은 큰돈을 벌고, 아편에 중독되는 대다수 사람들은 늦든 빠르든 파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