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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세오 소설집 <중력의 노래를 들어라> 리뷰: “이윽고 거대한 해일이 될, 첫 파도의 시작점” by 이경희 이윽고 거대한 해일이 될, 첫 파도의 시작 남세오는 정말 특별한 작가다. 왜냐면 이 사람, 정말 만능이니까. 처음 작가로 모습을 드러냈을 땐 같은 미스터리를 쓰기 시작하더니, 은근슬쩍 같은 호러 괴담을 쓰는가 하면, 같은 정통 판타지도 꽤 오래 연재했고, 어느새 이나 같은 동양풍 판타지까지 질투 날 정도로 능숙하게 써낸다. 게다가 이 작품들을 한데 뒤섞은듯한 분위기의 단편인 도 있다. 보통은 한 장르도 제대로 다루기 힘들어야 정상인데, 이 작가는 호러, 스릴러, 미스터리, 판타지, (가끔은 로맨스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게다가 이 사람, SF까지 잘 쓴다. 과학자 출신 작가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능숙히 허구를 다룰 줄 안다. 남세오는 SF 영역에서도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같은 찐 이과 개그..
[칼럼 SF 완전사회. 16] 천재 신화는 우생학을 사랑한다 by 강현 천재 신화는 우생학을 사랑한다 인류가 욕망하는 것을 자제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 우리의 ‘더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은 어마무시한 추진력으로 문명을 일구었다. 우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할 것이다. 잠을 유전적으로 줄이는 것이 가능하고 거기에 보편적으로 걱정되는 리스크가 아무것도 없다면? 부작용도 좋은 부작용만 있다면? 안 할 이유가 없다. 그런 가정을 갖고 시작한 소설이 있다. 낸시 크레스의 『허공에서 춤추다』(정소연 옮김, 폴라북스, 2015)에 수록된 「스페인의 거지들」이다. 「스페인의 거지들」의 주인공 리샤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탄생한 불면인이다. 불면인은 잠들 필요가 없으며, 뇌 발달도 표준보다 우수하고, 노화하지 않는 신체를 가졌다. 리샤와 그의 아버지는 작중에 등장하는 ..
[칼럼 SF 완전사회. 15] 본성이 우리를 배반한다 by 심너울 본성이 우리를 배반한다 듀나의 단편집 『두번째 유모』에 수록된 「사춘기여 안녕」을 좀 훑어 보자.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내가 ‘정상적인 아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정상이 아닌 이유는 ‘시술’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자기를 정상으로 생각하지 않을 거라는 자격 지심에 가득 차 있는 나는 별것 아닌 일로 폭력적인 소동을 벌인다. 그리고 그 폭력적인 소동을 벌이는 것 자체가 내가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요즘 세상의 아이들이 모두 받는 시술은 척추에 나노봇을 주입하여 진행된다. 그 나노봇들은 뇌로 직접 들어가 모종의 작용을 한다. 자세하게 묘사가 되지는 않지만, 이 시술에는 사람의 사고와 의지를 명료하고 또렷하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는 듯하다. 개인의 머릿속에 휘..
[칼럼 SF 완전사회. 14] 과학상상화를 그리는 다양한 방법 by 이산화 과학상상화를 그리는 다양한 방법 개봉 전부터 “한국에서 최초로 시도하는 우주 SF 블록버스터”라고 소문이 자자했던 영화 를 넷플릭스에서 감상하는 동안, 초등학생 시절에 과학의 날 행사의 일환으로 매번 열렸던 과학상상화 그리기 대회가 문득 떠올랐다. “과학기술이 발전한 미래의 풍경을 상상해 그려 보자”는 취지를 가진 행사이니만큼 당시에 또래들이 그려낸 과학상상화의 단골 주제는 휘황찬란한 미래 도시나 사람을 돕는 로봇, 아니면 태극기를 달고 별 사이를 누비는 우주선 등이 대부분이었다. 한번은 조금 다른 걸 시도하고 싶어서 집에 있던 낡은 과학책 『프뢰벨 사이언스 스쿨』 시리즈에 소개되었던 궤도 엘리베이터를 흉내 내 그린 적이 있었는데, 어떻게 이런 구조물이 안정적으로 서 있을 수 있겠느냐는 담임 선생님의 회..
조선스팀펑크연작선 <기기인 도로> 리뷰: 왜 한국에서는 스팀펑크 물이 나오지 않는가? by 홍지운 왜 한국에서는 스팀펑크 물이 나오지 않는가? “왜 한국에서는 스팀펑크 물이 나오지 않는가?” 이 말을 꺼낸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의 답변을 듣기 위해서가 아닌, 자기가 부연하기 위한 서두로써 이 질문을 던지고는 했다. 그리고 그들이 공들여 준비한 질문들은 대부분 비관적인 결론으로 마무리되고는 했다. 사실 이런 비관적인 질문은 뒤에 들어가는 단어만 바뀌어서 매번 반복되고는 했다. “왜 한국에서는 하드 SF 물이 나오지 않는가?”나 “왜 한국에서는 스페이스오페라 물이 나오지 않는가?”처럼 말이다.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진지한 논의를 하겠다는 척 훈수를 두고 싶은 사람들이 해당 질문을 할 때마다 SF 작가들에게 100원씩 국가보조금을 지원하는 정책 사업이 있었는데, 억대에 달하..
보리스 아쿠닌 장편소설 <아자젤> 리뷰: 지적인 역사 추리 소설을 읽는 즐거움 혹은 ‘움직이는’ 보통 탐정 판도린과의 첫 만남 by 이항재 지적인 역사 추리 소설을 읽는 즐거움 혹은 ‘움직이는’ 보통 탐정 판도린과의 첫 만남 1980년대 중반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개방, 1991년 소연방 해체의 과정에서 형성된 포스트 소비에트문학 지형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등으로 대변되던 본격(고전)문학의 쇠퇴와 대중문학의 급부상이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본격문학과 대중문학 사이의 경계 약화, 출판의 상업화, 검열과 금기의 해제, 대중적 취향의 변화 같은 다양한 문학사회학적 원인이 있을 것이다. 아무튼 연애소설, 판타지, 추리 소설 같은 대중문학에 대한 러시아 독자들의 관심은 전례 없이 높아졌고, 특히 추리 소설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한마디로 추리 소설이 러시아 출판시장과 서점을 점령해 버렸다고 말할 수 있다. 현재 보리..
보리스 아쿠닌 장편소설 <리바이어던> 리뷰: 밀실 살인 사건을 통해 떠나는 세계 유람 by 홍지운 밀실 살인 사건을 통해 떠나는 세계 유람 1878년 봄, 프랑스의 경찰, 구스타프 고슈 경감은 신나는 일을 하나 맡게 된다. 정년퇴직까지 3년밖에 남지 않은 이 상황에, 연금 서열을 한 등급 올릴 수 있는 거대한 범죄를 수사하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그것도 호화로운 여객선, ‘리바이어던호’에 올라탄 채로 말이다. 그 사건이란 즉 이러하다. 파리에 있는 리틀비 경의 저택에서 그 하인들과 리틀비 경이 살해당하고 만다. 리들비 경은 귀중한 수집품들을 한가득 소장하고 있었고, 현장에서는 황금으로 된 시바 조각상과 스카프 하나가 도난품으로 신고된다. 여기서 의문이 더 깊어질 일이 하나 더 있다. 범행의 동기로 여겨졌던 황금 시바상은 강바닥에서 발견되고, 범인의 정체와 그 동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단서도 남지 않..
[칼럼 SF 완전사회. 13] 우리는 어떤 자취를 남기게 될까 by 박해울 우리는 어떤 자취를 남기게 될까 타탸나 루바쇼바 글, 인드르지흐 야니체크 그림, 『ROBOT』 2021년이 밝자마자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작년 겨울엔 그리 춥지 않았는데, 올해 추위는 작년 몫이 합산된 건가?’라고 가볍게 여겼다가 기후변화에 대해 찾아보게 되면서 예삿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북극의 찬 공기를 막아주던 제트기류가 약해지는 바람에 한반도에 한파가 몰아닥쳤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작년 여름엔 50일이 넘는 장마가 있었고, 겨울은 너무 따뜻했다. 재작년 여름은 더워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것뿐인가. 전 지구적 전염병 사태는 아직도 안 끝났다. 나는 이번 겨울이 생애 첫 겨울인 아이들은 이 날씨를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들은 외출할 ..